쉽게 만나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인터넷상뿐만 아니라, 전화상이나 지인을 통해서 강사 신청을 받은 일도 제법 있다. 대개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요청문의가 사라지지만, 끈질기게 요청하더라도 거절한다. 내 스스로, 내가 아직 남을 가르칠 정도로 전문적 노하우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자신을 보면 남을 가르치기는커녕, 아직도 어디 학원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어야 될 녀석이다. 항상 그렇게는 생각하고 있지만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니 이제 슬슬 ‘아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굉장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뒤돌아서 생각해 보면 나는 아직도 택도 없이 모자란 사람이라는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항상 내 자신과, 배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누굴 가르칠 수준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런데도 배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다. 보면 그냥 만만한 사람에게 매달려서 대충 배울 녀석도 아니다. 뜻있고 나름 똑똑한 녀석인데 왜 그런 고집을 부리는 걸까. 아니 대체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에게 배워야 한다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이것은 이미 나 개인이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배우고 싶으면 학교에 가면 될 일이다. 학교가 비효율적이라 생각하면 학원에서 단기속성코스를 밟으면 된다. 당장 눈만 돌리면 버스를 타고 10분 거리마다 디자인학원이 적어도 한군데는 있다. 시간대비 효율을 생각하면 나쁜 가격도 아니다. 때문에 나는 이쪽 일을 하고 싶다는 동생들에게 학원을 추천하곤 한다. 그런데도 시간표를 보고는 질색한다. ‘니가 정말 이쪽 일을 하고 싶으면 배워야 한다’, ‘나도 너만큼 시간 있고 여건이 되었다면 지금쯤 학원에 다니고 있을 거다’ 등의 말로 열심히 설득하고 달래서 학원에 보내면 다음 달에 바로 관뒀다는 문자를 보낸다. 왜 관뒀냐고 물어보면 거기서 배우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림 잘 그리는 것처럼 보이는 방법, 툴 다루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한다.
아니, 당연하잖아. 일을 하고 싶으면 일단 취업을 해야 거기서 더 필요한 것을 배우고 익히고 경험을 쌓고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학원에선 취업 잘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거고. 이것에 대해선 절대 다수의 게임개발자가 동의하는 바다. 일단 인터넷에 접속해서, 아무 개발자 커뮤니티에 간 다음에 거기 있는 아무나 붙잡고 가장 빨리 실력 높이는 방법이 뭐냐고 물어봐라. 백이면 백 일단 아무데나 취직해서 경험 쌓으라고 할게다.
나 또한 취업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회사에 들어가서 더 나은 선배들에게 배우고, 여러 명이 집단으로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빠른 실력향상의 길이다. 그렇기에 뜻있는 사람들은 학원에 몰려들었고, 학원은 그들을 취직시키기 위해 가장 유행하는 그림체, 가장 멋져 보이는 색상, 가장 자주 쓰이는 그래픽 툴, 가장 취직 잘되는 방법을 가르쳤다. 일단 취직만 되면 사원교육이나 간단한 실무를 통해 정말 회사에서 쓸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리니지로 대표되는 대형 MMORPG의 시대는 확실한 게임개발자의 번영을 약속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완전히 뒤집어졌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자 투자하면 투자한 만큼 나오는 사업이라 생각해온 게임은 다시 물음표로 변했다. 여기, 게임과 각종 엔터테인 사업을 경험해 보신 지인의 말씀을 소개한다.
“게임 투자는 투자가 아닌 투기라더라.”
왜 투자가 아니라 투기가 되었을까. 이해를 돕기 위해 한 마디 더 소개하자. 내가 지역 게임아카데미 강사 대표로 게임아카데미 세미나에 갔을 때의 일이다. 리니지의 성공 이후 수많은 회사들이 게임에 투자하고 그 돈으로 만들어진 블록버스터 MMORPG들이 등장한 그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당연히 ‘투자한 만큼 돌아오겠지’라고 생각하던 그때 그 상황. 성고하리라 의심치 않고 시장에 게임을 내놓았던 그때 그 게임들의 성과를 그 유명한 N모회사의 팀장님께선 이렇게 표현하셨다.
“솔직히 쫄딱 망했죠.”
그 말을 듣고, 일반인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초대형 게임개발업체의 팀장님들과 게임아카데미 관계자들이 다함께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웃고 있는데 웃는 모습이 아니더라. 나도 같이 웃긴 했는데 입속이 썼다. 팀장님들 속은 오죽했으랴.
그 ‘쫄딱 망한’ 이후 게임업계는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업계의 주축을 이루는 개발자들과 투자자들의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업계축소’가 아니라 ‘심장이 쪼그라들었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아직도 게임업계는 겉보기엔 참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시장은 끝없이 커졌고, 해외에서의 한국산 온라인게임의 위상은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시작은 화려했지만 알고 보면 속 빈 강정이다.
멋진 작품 나왔다. 사람들 많이 한다. 덕분에 시장 커졌다. 그 멋진 작품 따라서 더 많은 돈 투자해서 큰 작품 만들었다. 그런데 쫄딱 망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많이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멋진 작품을 알아보지 못한다. 억울하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왜 이걸 안하는지 모르겠다. 모르겠다. 그저 모르겠다. 그냥 이것저것 윗사람들 시키는 대로 작은 물건 내놓다 보면 그중에 하나 정답이 나오지 않을까.
어디서 많이 본 흐름 아닌가? 어쩌면 이렇게 10년 전 애니메이션 몰락의 길을 그대로 답습하는지 모르겠다. 5년 뒤 우리나라 게임업계에 대해 예언 한마디 할까? 기술력과 인력만 잔뜩 불려놓고 그걸로 외국 게임들 제작 하청만 받겠지. 그러면서 그저 다른 나라들이 제작비의 몇 백 배씩 이윤 남기는 걸 보면서 부러워만 할 뿐이다. 가끔 뜻있는 사람들이 쌈지돈 모아다가 그래픽이랑 기술력 훌륭한 게임을 내놓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돈이 되진 않는다. 돈이 되긴 고사하고 개발비라도 건진다면 다행이다.
왜 한국 애니메이션이 성공할 수 없냐고? 사람들 잔뜩 모인 커뮤니티에 이 질문을 던져 보면, 자칭 ‘뜻있고 깨어있는 분들’이 우수수 한마디씩 하신다. 그분들의 결론은 간단하다.
감독이 없으니까.
하청경험이 많다고 해도 외국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했지 정작 그 물건을 0에서부터 만들 수 있는 우리나라 감독은 육성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백번 맞는 말이다. 지휘하는 사람이 뭘 해야 할지 알아야 밑에 있는 개발자들도 자기 능력을 발휘할 게 아닌가. 감독은 게임업계로 이야기하자면 ‘기획자’이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은 똑똑하다. 앞서 이야기한 애니메이션의 실패를 거울삼아 기획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훌륭한 기획자가 많아야 게임업계가 탄탄해진다고 외치고 있다. 많은 경험을 쌓아온 기획자를 강사로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나라 게임업계는 제대로 골격이 잡힌 게임업계의 할리우드가 될 것이라 꿈에 부풀어 있다. 대형 MMORPG의 난립사태 이후 제2의 황금빛 꿈의 시대다.
그런데 질문 하나 던진다. 그 수많은 경험을 쌓아온 기획자들이 정말 학생들을 성공하는 기획자로 만들 수 있는가? 이 학교의, 이 학원 출신의 기획자는 어리지만 정말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기획자라고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가?
절대 아니다. 그냥 ‘기획자는 이런저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것만 배운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어떻게 ‘돈 되는’게임을 만들 수 있는가.
그제야 저 위에 소개한 ‘배움을 청하는 동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똑똑한 놈이 왜 그런 고집을 부리는가 싶었는데 그냥 생각 없이 땡깡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대단해서 나한테 배우겠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현재의 교육체계에 실망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내가 ‘선택된’ 것뿐이다. 취업을 바라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속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야흐로 문화사업의 시대가 왔다.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게임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학교를 설립했지만 체계도 허술할뿐더러, 결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선생들이 부족했기에 학원에 비해 비효율적이었다. 정말 정부가 게임산업에 관해 제대로 된 교육체계를 갖추려 했다면 ‘강의를 위한 개발자 출신 선생’부터 육성해야 했을 일이다. 현직 개발자 중에 경력자 뽑아다가 강사로 세운다고 해도 ‘예전에 돈이 되었던 게임은 어떻게 만들었는가’는 가르칠 수 있지만 ‘왜 그게 돈이 되었는가’를 가르치진 못한다. 그 노하우들은 그 당시에 성공한 노하우일 뿐이다. 툴 다루는 방법이나 조합방법, 사람 다루는 방법 등등 당장에는 건질 것이 많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대다수의 실전 노하우는 시장상황이 바뀌면서 무용지물이 된다. 학생들이 졸업한 뒤에 성공할 것인지는 여전히 완벽하게 물음표이다.
결국 학교나 학원이나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소리다. 그냥 빨리 취직해서 ‘내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리스크 없이 펼쳐보는 것이 이득이다. 회사가 적자를 보거나 말거나 나야 월급 받고 게임 만드는 사람이니 별 상관없다. 회사 입장에선 개발자가 소모품이지만, 결국 이런 소모품들에게도 나중에 가면 ‘회사’는 내가 만드는 게임이 망했을 때 나 대신 리스크를 받아줄 ‘실험장’일 뿐이다. 여전히 게임산업은 겉보기에 화려하고, 덕분에 과거 블록버스터 MMORPG들로 수많은 투자가들이 뜨거운 맛을 봤다곤 해도 여전히 수많은 투자가들이 회사 이름을 보고 제작비를 쾌척할 것이기 때문이다.
눈에 비치는 그대로, 게임업계 높으신 분들의 동향을 설명해 보겠다. 내 눈엔 그분들이 꼭 이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 게임사업 돈 좀 되겠네. 이거 국가사업으로 지원하자. 파트별로 강의 만들고 이름 있는 사람들 데려다가 애들 가르치면 되겠다. 좋아, 학교 만들고 구색 다 갖췄으니 이제 계속 잘 팔리는 물건이 쏟아져 나오겠지.”
“게임은 엔터테인이고, 엔터테인은 서비스고, 서비스 산업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냥 그때그때 사람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재빨리 만들어 잠깐 벌 뿐이다. 그러므로 무난히 캐주얼한 게임을 만들고 이것저것 전에 성공한 게임들 벤처마킹해서 내놓고 개발비만 적당히 건지다 보면 우연히 성공하는 게임도 나오겠지. 오, 근데 딴 업체들도 이렇게 하네. 하긴 이게 정답이지.”
내 생각이 틀렸기를 바란다. 제발 부탁인데 아무나 권위 있는 분이 나서서 내가 너무 세상을 아니꼬운 눈으로 보고 있다고 말해주길 바란다. 나도 내가 성격 비비 꼬인 거 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저게 현실이 아니길 바란다.
왜 센스 있고 뜻있는 아이들이 취직 안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모여서 자기들끼리 게임을 만드는가. 왜 시나리오 라이터를 꿈꾸는 아이들이 학원에 가질 않고 집에 처박혀서 자기 세계관을 만들고 있는가. 왜 디자이너를 꿈꾸는 아이들이 멀쩡한 교육체계 있는데도 게임학교 안다니고 집에 앉아서 비싼 돈 주면서 외국 잡지 사다 보는 걸까. 왜 게임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아이들이 대학 강의시간에 교수님 눈을 피해서 노트북 들고 돈도 되지 않는 시스템을 혼자 만들고 있는가. 정말 그 수많은 아이들이 모두, 단순히 집밖에 나가서 고생하기 싫어하는 겁쟁이라 그런다고 생각하는가? 거기선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울 수가 없어서 그러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게임성은 없고 테크닉만 있다. 창작은 없고 베끼기만 있다. 분석은 없고 애매한 예언만 있다. 체계를 만들 생각은 없고 경험자의 노하우에 기대기만 한다. 기획자는 인력과 일정관리를 할 뿐이다. 빠른 물갈이와 화려한 그래픽이 정답이다. 성공한 외국 기획자는 알아도 정작 그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을 생각은 없다. 그저 말없이 벤처마킹할 뿐이다.
보고 또 봐도 해답은 나오지 않고 대신 산더미 같은 의문만이 남는다.
교육에 대한 의문.
많은 게임의 기획자로 이름이 올라갔고, 그중에는 성공한 게임도 있으면 이 기획자는 아이들을 가르칠 가장 완벽한 선생감인가? 선생님의 소질이 있다고 치자, 그럼 그 선생님은 뭘 보고 선생일을 배우면 되는 거지? 아 지금 보니 교과서가 좀 그렇네, 아 그렇다고 교과서 무시하고 내식대로 가르치기도 그렇고.
개발자에 대한 의문.
이 사람이 게임을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 것인가. 수많은 게임을 만들다가 아주 우연히 하나를 성공시켰다 해도 그 개발자가 다음번에도 돈 되는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투자에 대한 의문.
이 게임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보장할 수 없기에 게임에 대한 투자는 영원히 투자가 아니라 투기가 될 것이다. 게임뿐만이 아니라 엔터테인사업이 모두 그렇다. 이유없어보이는 성공은 수많은 실패자와 우연한 성공자를 만들어낼 뿐이다.
정말, 속담대로 부자는 3대를 못가는 걸까. 끝없이 훌륭한 인재가 배출되는 성공 케이스가 없는가? 그럼 모 명문대학은 왜 계속 좋은 학생들을 배출하는 걸까. 그냥 단순히 사람이 많아서 지원자 중에 혼자 잘 크는 천재만 가려내도 꽤 많은 걸까?
서비스업은 불안하다고? 그럼 할리우드는 왜 무너지지 않았을까. 항상 위기다 위기다 하면서도 영화계의 절대 강자의 자리를 계속 꿰어차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냥 어쩌다보니 유명해져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니까?
당장 방법이 필요하다. 성공한 선생님으로 성공하는 학생을 키우는 방법. 투자를 투자로 만드는 방법. 무너지지 않는 꿈의 도시를 만드는 방법. 거기 출신들은 믿을 수 있다고 업체들에게 인식시키는 방법. 국가산업이 빚잔치로 끝나지 않고 결실을 보는 방법.
말은 거창하지만 알고 보면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연출교본을 만들면 된다.
할리우드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뜻있는 학생이 주변에 있는 경험자를 ‘잠깐스승’으로 삼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궁금한 것은 왜 기획자가 필요한지가 아니라 이런 상황에 이런 고객을 상대로 어떤 장면을 연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다. 연출가를 전문적으로 배출해내지 않는 이상 게임업계는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하청의 명문으로 명맥을 유지할 것이다. 사실 그 길도 그리 나쁘진 않다. 하지만 그저 ‘나쁘지 않은 수준’을 위해 그 많은 돈을 쏟아 붓고 국가적으로 지원한 것은 아니잖은가.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에는 비운의 명작이 많다고 말한다. 가뭄에 콩나듯 실력 뛰어난 사람들이 뭉쳐서 자기 돈 털어서 명작을 만들곤 하지만 잠시 이슈가 되곤 사라질 뿐이다. 왜 그 게임이 실패했는지 분석하고 안타까워하는 후배들은 많지만 그런다고 그 후배들이 그보다 성공한 게임을 만들진 못한다. 왜냐면 눈앞의 기법에 집중하다가 정작 ‘왜 그 선배는 이 장면을 이렇게 만들었지?’를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비운의 명작뿐만이 아니라 잘나간 명작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성공은 과거의 성공일 뿐이다. 그때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삶을 살아온 유저들이 게임을 하게 될 텐데 과연 그때와 똑같은 반응이 나올 것인가?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게임이라면 왜 아직도 꾸준히 사랑을 받는 것일까?
잘 짜인 연출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연출의 기둥이 되는 핵심이 있고, 그 핵심은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어 사람을 대상으로 한 매력의 분석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이것을 한 번의 명작으로 끝내지 않고 게임업계의 미래로 만들기 위해선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남겨야 할 필요가 있다.
인프라는 갖추어져 있다. 이미 사이버게임아카데미에서 연출자 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연출론 강좌를 열기로 결정했으며 학생들을 가르칠 만한 숙련도 높은 한국형 연출자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교재를 통해 연출을 배운 학생들이 새내기 연출자가 되더라도 그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실제 사례를 담은 수정, 보완, 정리된 연출가이드가 그러한 인력을 한층 더 완성된 창작자로 만들 것이다.
진정한 창작가, 진정한 기획자, 진정한 팀장은 리드하는 자이며 감독하는 자다. 현재에 이르러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변혁에 엔터테인 산업이 휘청거리는 이유는 어느 상황, 어느 때에도 대처할 수 있는 연출의 중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대 경험자의 노하우에만 기대는 얄팍한 산업은 한 세대를 넘기기 힘들다. 허나 반대로, 물려주고 보완해 나갈 수 있는 연출교본이 있다면 거기 적힌 과거의 경험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연출교본을 만들 것을 제안하고, 스스로 진행한다. 이로 인해 이름을 얻는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며, 내가 처음으로 생각해낸 아이디어라고 떠들어 댈 계획도 없다. 다만 상담하고 설득하고 재능이 조금이나마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을 대신하여 권유하는 글을 제작할 뿐이다.
또한,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연출의 중요성을 강조하려 현재의 교육체계를 언급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교육체계를 만들어낸 분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수많은 선배님들과 관계자분들이 음지에서 귀중한 시간을 희생해 주셨기에 현재의 조직적인 교육체계가 갖춰진 것이다. 게임개발자를 꿈꾸는 후배들은 이제 기획-그래픽-프로그래밍-시나리오라는 세분화된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과거 막연한 벌판에 스스로를 던져 배를 곯으며 지도를 만들어 주신 수많은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며, 언제 어느 순간에도 절대 가볍게 여겨질 수 없는 위업이다.
허나 현재의 화려한 현실에 눈이 멀어 만족한다면 내일은 없다. 여전히 게임업계에 종사하고 있을 미래의 나와, 앞으로도 끊임없이 배출될 한국 게임업계의 후배들을 위해 무엇을 물려줄지를 생각해야한다.
나 또한 그림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디자이너로서 자기 창작물을 소중히 여기고 저작권에 까다로운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기획자가 기획서를 튼튼한 서류철에 넣고 애지중지 품고 다니며 혹여 정보가 샐까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며, 시나리오 라이터가 자기 소설을 출판하기 전까지 자기 컴퓨터의 하드에 꽁꽁 감춰놓는 것도 당연하며, 프로그래머에게 있어 골방에 앉아 주린 배 움켜쥐며 짠 시스템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생명과 같은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고 공익을 위해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붓을 어떻게 놀리고, 언제 누구에게 기획서를 오픈하고, 주인공이 무슨 말로 히로인에게 프로포즈하고, 어떤 코드를 몇 번째 줄에 넣을 것인가에 관한 지식과 노하우는 오직 당신만의 것이다. 그걸 멋대로 오픈하고 물려주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려주고 싶은 것은 상황에 따른 연출기법에 대한 이론이다. 물론 허락한다면 현직에 종사하는 분들의 작품 몇 점을 예로써 사용하고 싶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분들의 허락을 받고 나서일 것이다.
다행히도 인터넷과 각종 개발자 커뮤니티가 있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현재와 과거의 수많은 케이스를 관찰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과거처럼 어렵고 불가능하게 여겨지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간곡히 부탁드린다. 이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게 될지 모르지만 분명 한 사람이라도 관심 있는 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문에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거나 추가할 내용이 있다면 기탄없이 의견을 던져주시길 바란다. 아니, 꼭 이 글을 보완해 나갈 필요까지도 없다. 어딘가에서 창작의 꿈을 불태우고 있을 후배들에게 자신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면 지금 자기가 겪고 있는 일과 거기서 나오는 노하우를 데이터로 남겨달라. 머리를 숙이고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이다.